20231018 블로그 이전

블로그 이전

원래 운영하던 블로그에서 티스토리 블로그로 이제 새로 시작을 해보려 한다. 처음 개발 공부할 때 부터 추억이 많은 블로그인데 여러가지 이유로 이전을 결심하게 되었다.
첫 번째로 블로그 포스팅 과정이 너무 복잡하다… 깃허브에서 정적페이지 블로그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웹 호스팅 서비스인 깃 페이지를 통해 기존 블로그를 운영했었는데, 그래도 개발자라면 직접 개발 블로그를 만들어야지 하는 객기로 시작했던 것 같다. 지킬 템플릿을 적용시켜 마크다운 문서로 포스팅을 하면 내가 다른 무슨 설정을 하지 않아도 깃액션을 통해 자동 배포가 되는 시스템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 포스팅을 할 때는 못느꼈던 점점 길어지는 배포 시간에, 언제부턴가 하루 공부를 마치고 포스팅을 걸어놓고 자고일어나서 다음날 아침에 글이 올라가는 경험을 하면서 블로그가 무거워지면 활용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오타 하나 수정하는데도 배포되는데 5분이 넘게 걸려버리니 말이다.)
또, 잘 모를 때 만든 애드센스에, 사이트맵에, 검색기능에 기타등등의 코드들이 지금 보니 레거시 덩어리로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걸 리팩토링하기엔 내가 희망하는 직무가 웹개발이 아닌데 싶어 깔끔하게 기존에 존재하는 티스토리라는 플랫폼으로 블로그 이전을 결심하게되었다. (사실 블로그 포스팅만하면 깃허브 잔디가 채워지는 건 개꿀이긴 했다.)
두 번째로는 취직 전 취준기간과는 다른 새마음 새뜻으로 블로그 포스팅을 하자는 생각에 블로그 이전을 결정하게 되었다. 겸사겸사 Swift 포스트를 새로 올리면서 한번 더 복습하는 시간도 가지기 위함도 있었다. 앞으로 공부한 내용은 이 블로그에 포스팅 할 예정이고, 기존 포스트들도 차차 이 블로그로 옮길 예정이다. 이직을 결심한 김에 새 마음 새 뜻으로 시작해 보려한다.

이직을 결심하게 된 이유

사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중소기업치고는 확실한 캐시카우가 있고 신입초봉, 연봉인상률, 복지가 괜찮은 편이다.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을 다녔지만 그렇게 느낄 정도로 말이다. 도메인도 평소 관심이 많던 도메인이고, 전문성을 쌓는다면 이직하기도 수월한 편이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 회사가 특정될 수 있을 거 같아 회사에 대한 설명은 이 쯤하고, 그럼에도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Si의 아웃소싱 개발의 한계를 느끼고 인하우스 개발을 하고 싶어서가 가장 크겠다. 작년 애플 개발자 아카데미에서 iOS를 공부할 때도 내 목표는 서비스 회사에서 개발을 하는 게 목표였다. 회사 자체 서비스를 위해선 UI와 UX를 고려할 수 밖에 없다. 유저와 바로 맞닿는 모바일 개발의 특성상, 유저 중심으로 인터페이스를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기획자와 디자이너와 함께 그런 고민을 하는 게 재미있었다. 근거있는 UI를 위해 함께 고민하는 과정은 외주 개발 업체로서는 제약이 많다. 요구사항을 그대로 반영해서 개발해야하다보니 일을하면서 개발자보단 코더가 된 기분이 많이 들었다. 이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가 될 것 같다. 내가 아카데미에서 그렇게 배워왔고,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개발과 거리가 있는 일을 하다보니 일도 재미가 없고 일에 대한 보람을 못느끼게되면서 내가 좋아하는 개발을 하자는 생각에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중소기업에서 생각보다 괜찮은 연봉과 복지를 누리게된다면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 갖게된다. 웃기게도 그게 사람 맘이라는 게 그렇게 되더라. 입사하고 몇 개월 간은 회사 적응하느라 퇴근 후 공부를 못했다는 변명이 되지만, 반년 정도 지나니까 슬슬 그냥 스스로가 편안함에 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도전을 좋아하고 깨지고 부딪히며 성장하는 걸 즐겼던 나도 취준이라는 기약없는 암울한 기간을 거치다보니 이제 안주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도태되기는 싫어서 깨지고 부딪힐 수 있는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며 정리해보니 난 “깨지고 부딪히며 내가 도전하며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인하우스 개발을 할 수 있는 스타트업“으로 가고 싶다고 정리가 되는 것 같다.

앞으로 포스팅 계획

Swift의 기본은 작년에 열심히 공부해서 어느정도 기본기는 갖춰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멀었다.) 작년에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URLSession으로 API를 받아온다거나, GCD를 통해 비동기 처리를 한다던가 퍼스트파티 라이브러리를 주로 활용하였다. 어차피 퍼스트파티 라이브러리의 이해도가 높으면 서드파티 라이브러리는 활용법만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치만 작년 말과 올해 초 많은 면접을 보면서 느낀 점은 신입을 키울 시간과 자본이 되는 대기업이 아닌 이상 스타트업에서는 지금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더라. 뭐, 나의 오해일 수도 있다.
작년 면접을 봤던 여러 회사 중 꼭 가고 싶었던 기업들이 있었는데, 대학생 커뮤니티 E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와 직장인 커뮤니티 B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에서 들었던 비슷한 말이 있다. 으레 어떤 면접이든 묻는 질문 중 하나인, ‘더 궁금한 점은 없으세요?’에서 늘 나는 ‘물론 잘되서 함께하면 좋겠지만 만약 제가 떨어지게 된다면 면접과 관계없이 후배 개발자로서 조언을 부탁드린다면 저는 어떤 점을 더 노력하면 좋을까요?’ 묻는 편이다. 어딜가나 서드파티 라이브러리 활용 경험이 없는 점이 아쉽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래서 이번엔 그 경험을 만들어 보려 한다.
작년 여러 스타트업 지원을 하면서 사전과제를 경험할 기회가 꽤 많았는데, 하나같이 API를 받아와서 화면에 컬렉션뷰를 통해 띄워주는 뭐 대충 그런 과제들만 내주더라. 조건이 더 붙고 덜 붙고의 차이였지 모든 과제의 문맥은 동일했다. 아마 모든 기업이 신입 모바일 개발자에게 바라는 게 딱 그정도가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니 한 기업 과제를 하는데 Alamofire나 Kingfisher를 사용하지 않고 URLSession이랑 URLCache로 네트워킹이랑 이미지 캐싱했다고 ‘서드파티는 아예 다룰 줄 모르세요?’ 라고 물어본 회사도 있었다…ㅠㅜ) 여튼, 예전에 했던 그 과제를 바탕으로 샌드박스 프로젝트를 해볼까 싶다. 별 뜻은 없고 아이들이 다치지않고 놀이터처럼 놀 수 있도록 모래가 담긴 공간을 뜻하는 샌드박스를 붙여 내가 그냥 명명한 프로젝트 이름이다. (드라마 스타트업을 재밌게 봤었던 영향인가 보다.)
물론 그 과정을 이 블로그에 기록할 생각이다. 블로그 포스팅을 하니 좋은 점이 ‘아 이거 예전에 내가 했던건데?’ 싶을 때 블로그에 검색하면 된다는 점이 편해서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게되었다. 퇴근 후 카페에 앉아서 주저리주저리 일기를 적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졌다. 여튼! 앞으로 성공적인 이직을 위해 화이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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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4 스터디 - 전설의 시작 (아마도...?)

2달 반

마지막 에세이를 쓰고 두달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게을러터져서 일기쓰는걸 미루다 미루다 결국 2달이 넘게 지나버렸다. 그 두달간 꽤나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지난 일들을 회고를 해보려 한다. 에세이를 쓰는 것은 오랜만이라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어떻게 이어가야할지 어떻게 끝을 내야할지 머리에 잡히는 감은 1도 없지만 어차피 끄적인다는 본래의 의미는 아무렇게나 쓴다는 의미니까 두서없이 써내려 가 보려 한다.

코딩테스트

내 생에 처음으로 코딩테스트를 쳐 봤다. 이제까지 알고리즘 문제만 죽어라 풀어보았지, 기업에서 내는 시간 내에 문제를 몇 문제 이상 맞춰야하는 그런 테스트는 처음 쳐 보았다. 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1차 광탈했지만 생각보다 하면 될 것 같다는 자신감을 붙게 해 줬기에 의미있는 하루였다. (라인 2시간, 카카오 5시간 동안 시험을 치느라 머리 터지는 줄 알았다.)
처음 시험을 치기 전 목표는 ‘내 실력에 1문제만 맞춰보자. 코테가 어떤지 경험해보는 데 의의를 두자.’로 시험에 임했는데, 막상 시험을 끝내니 내가 푼 카카오 문제가 작년 코테 커트라인 컷에 걸쳐서 조금 기대를 했었다. (솔직히 작년보다 이번이 더 쉬워서 결국엔 0.5솔 차이로 커트 당하긴 했다.) 뭐 중요한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내년에는 노려볼법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에 의의를 둘 수 있는 경험이었다.

스터디

취준 스터디를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스터디원을 모아야하나, 막상 모으면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만 하다가 그냥 질러보자는 식으로 에타에 글을 올려서 모집을 했다. 처음에는 나같은 ㅈ밥만 모일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나보다 잘하는 친구들이 두명, 초보인 친구 한명 이렇게 나 포함 4명이서 스터디를 진행하게 되었다. 한명은 학부때 동아리 후배로 꽤나 잘 하던 친구였는데 대기업 면접까지도 가 본 경험이 있는 친구라 같이 스터디 하면서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아서 이 친구가 스터디원으로 들어와 같이 한다니 든든했다.
스터디원 전체가 당장 포트폴리오용 양산형 프로젝트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의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구조와 원리를 이해하며 제대로 설계 해보자는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스터디 진행에 있어 차질 없이 다들 잘 따라와 주는 것 같다. 스터디를 처음 모았다고 나름 스터디장으로서 스터디를 어떻게 굴려야할지 나와 우리 스터디원들이 이 스터디를 통해 어떤 것을 얻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그런 방향으로 진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직 시작한지 한달도 채 되지않은 스터디라 내가 생각한 대로 잘 흘러가 줄지는 모르겠지만 4명 모두 원하는 곳에 취직할 수 있도록 끝까지 잘 이어갔으면 좋겠다.

끝마치며

요즘 매일같이 공부하는 일상만 반복하다보니 뭐랄까 삶에 큰 낙이 없이 공부만 하고 있다. 마음은 조급해서 여유는 없고 그렇다고 매일매일 시간낭비 않고 공부에만 집중하는 것도 아니다. 제일 최악의 딜레마에 빠져 살고 있긴 한데 최근 밤하늘에 별을 보러 천문대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가끔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힐링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공부도 좋지만 마음에 여유없이 공부하는 건 적당히 공부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나 스스로 그렇게 열심히 하고있다고 말하진 못하지만 나쁘지 않은 속도로 달리고 있으니 가끔은 주위의 풍경을 보며 걷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나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다. 올 여름도 수고했고 가을에도 힘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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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08 취준에 대한 고찰

오랜만에

오랜만에 다시 일기를 끄적이려 새벽감성에 노트북을 켰다. (사실 공부한다고 노트북은 켜져있긴 했다.) 딱히 무언가 딱 떠오르는 글감이 있어서 켰다기 보단 요즘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잠시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다이어리 포스팅을 하려한다.

취준

나는 대학교 4학년때도 취준 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이미 창업을 통해 취직이 되어 있는 상황 이었고, 기업에 취직 하겠다는 준비 보다는 지금 당장 회사 프로젝트를 어떻게 하면 성공시킬 수 있을 지를 생각했기 때문에 요즘 생에 첫 취준을 하면서 느끼는 바가 정말 많다.
일단 주위 사람들과의 비교에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게 되는 것 같다. 원래 처음 취준을 할 때는 나는 하고싶은 것은 이뤄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고, 사실 1년만에 대기업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학부생 때 열심히 공부한 친구들과 비교해서 나는 열심히 일을 했지 노력의 정도는 같다고 생각했기에 나만 열심히하면 된다는 생각에 취직에 대한 큰 걱정이 없었다. 근데 이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가끔 센치한 밤이면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떨어지면서 가끔 우울해지는 그럴 때가 있다. 주위 취직 잘 해서 열심히 일 하고 차곡차곡 적금도 해가는 친구들과 모아 놓은 돈 오히려 깎아먹으면서 취준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괜히 비교도 하고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남자의 20대 후반 취준 시기가 자존감이 가장 낮을 시기라는 우스갯소리가 마냥 농담 만은 아니구나 하는 걸 최근 조금씩 느끼고 있다.

공부

공부도 그렇고 군대도 그렇고 남들 할 때 해야되는 시기가 있다는 말이 없잖아 맞는 말 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물론 나는 공부에 시기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말한 시기의 뜻은 과 동기들이 취준을 할 때 같이 스터디를 하면서 취준을 하면 지금 나 처럼 혼자 공부하는 것 보다는 보다 수월 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하는 말이다. 취준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서너달은 어떻게 공부해야할 지 방향도 못잡고 그냥 닥치는대로 공부를 했던 것 같다. 뭘 공부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어떤 공부를 해야할지도 모르겠어서 갈피를 못잡고 있는 상태로 주위 친구들의 조언, 유튜브, 구글링을 통해서 점점 취준 방향을 잡아나갔다.
거의 비전공자나 다름없는 제로베이스에서 학교 커리큘럼따라 혼자 유튜브 인강, 테크블로그 등을 찾아가며 공부하는 것도 이제 어느정도 익숙해 져서 점점 재미를 붙여가면서 공부하는 중이다. 학생때는 괜히 공부라고 하면 시험이라는 압박과 괜시리 부정적인 느낌에 하기싫고 그랬었는데, 요즘은 압박없이 혼자 정말 지식을 쌓는다는 느낌으로 공부를 하고 있으니 시너지가 좀 더 나는 것 같다. 내 평생 내 입으로 공부가 재밌어서 하고있다는 말을 하게 될 줄 몰랐는데, 요즘엔 조금 그런 느낌도 없잖아 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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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0 첫 에세이 - 나란 사람

들어가며

이 블로그를 만든 지 한 달 만에 처음 에세이를 써 본다. 새벽에 일기 쓰듯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요즘 피곤하다는 핑계로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다가 결국 한달이나 되어서야 처음 글을 쓴다. 어찌 되었던 블로그에 게시하는 첫 에세이다보니 나에 대해 길지는 않지만, 짧지도 않게 한번 소개를 해 보려 한다.
이 글 자체가 자기 만족일 수도 있다. 지금 내 블로그에 들어오는 방문자 유입 수를 보면 이 글은 정말 잘 도달 해 봐야 10명 정도에게 노출 될 것이며, 그 중 이 글을 다 읽는 사람은 한두명 정도 될 거라고 예상한다. 1년 뒤, 그때도 내가 하루에 한 포스팅을 이어간다면, 100명 정도에게 노출되고, 10명 정도가 보게되지 않을까. 어찌되었건 글을 끄적이는 걸 좋아하는 나니까, 그리고 얼마 전 보글보글 거리는 타건감이 좋은 무접점 키보드도 비싼 돈 주고 구매 했으니까 한번 끄적여 보려 한다.

13학번 컴공생

나는 13학번으로 대구의 한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내가 고등학생 때 ‘유령’이라는 드라마를 너무 재밌게 본 나머지 “나도 보안 공부를 해서 해커가 될거야!” 하는 허황된 꿈을 꾸며 컴퓨터공학과에 입학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취직을 하려면 공대가 좋긴 한데, 흔히들 말하는 전,화,기 (전자공학, 화학공학, 기계공학)을 가기에는 4대 역학을 공부하기가 너무 싫었던 이유도 있었다.
모든 신입생들이 그렇듯 나 역시도 ‘Hello World’를 출력할 때 까지만 해도 컴퓨터가 재미있고, 내가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한 것 같았다. 동기들과 자취방에서 밤을 새워가며 교수님께서 내 준 문제를 풀며 (사실 밤새 과제만 하진 않았다. 게임을 한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출력창에 원하는 결과물이 띄어졌을 때의 희열은, 물론 그건 지금도 그렇지만, 여튼 그때는 컴퓨터가 내겐 천직일 것만 같았다. 2학년 때 자료구조를 배우기 전 까지는.

2학년 때 자료구조라는 과목을 공부 할 때 그 놈의 ‘링크드 리스트’가 이해가 되지 않아 공부에 흥미를 잃고 게임에 더 빠졌던 것 같다. 몇년도 더 된 일이라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렇게 점점 학교 공부는 소홀해 져 갔고, 그러다보니 아예 수업은 빠지고 결국 기말때는 출석조차 하지 않았다. ‘C++(C++로 자료구조를 구현하는 수업이었다.)은 C+ 맞아야지~’ 하는 우스갯 소리와 함께 정말 C+을 맞게되고, 다른 과목도 성적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아 그렇게 2학년 1학기는 학고를 맞게 된다.
1학년 때는 학고 맞는 친구들은 어지간히 공부를 안했나보다, 그냥 교수님 하라는거 하고 보라는거 보면 B는 나오는데 좀만 열심히 하면 A가 나올텐데 D,F를 맞아서 학고 받는 애들은 뭐하는 애들이야 했었는데, 내가 그 학사경고를 받은 놈이 되어있었다. 이맘때 즘 부터 컴퓨터로 전공을 살리지 않고 취직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휴학과 다른 진로 탐색

우리 학교는 특이하게도 학고를 맞으면 집으로 경고장이 날아오게 되어있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 사실을 몰랐고, 불행하게도 그 등기 우편물은 내가 아닌 어머니가 먼저 보시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고등학생 때 사고 한번 치지 않고 조신히 학교 다니던 나름 모범생(…?) 이었고 학사경고장을 받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치 않으셨던 어머니께서는 휴학하고 군대를 다녀와서 다시 공부하자고 말씀 해 주셨고, 큰 화는 내지 않으셨다. 이제 성인이라시며 니 인생을 이제 니가 책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만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21살이면 아무것도 못하는 어린애지…)
그렇게 군대를 가기 위해 휴학을 하고 이런 저런 경험들을 하다가 영상 제작에 재미를 붙이게 되고 유튜브가 지금처럼 잘 되어 있지 않던 그 당시 페이스북 채널로 영상인 커뮤니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알게되었다. 지금 꽤나 큰 규모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유튜버들도 몇 있었다. 그 때 친하게 지내 놓을걸… 어찌되었건 영상에 빠져 이런 저런 영상 기획을 하고 촬영도 해보고 했던 경험은 나름 재밌는 경험으로 남아있다. 이때 이야기까지 하게되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각설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제대 후 학교 선배와의 창업

보통 남자들은 제대 후 복학 한 첫 학기는 성적이 좋다고들 하는데, 이미 전공을 포기한 나는 크게 학교 공부에도 재미를 못 붙이고, 적당히 학고만 맞지 않을 정도로만 해야지 하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들을 찾다보니 노래를 좋아하던 나에게 음악활동을 하는 단체에 들게되었고, 거기서 마음 맞는 학교 선배와 음악 사업을 함께 하게 되었다. 아이템은 간단했다. 좋은 노래지만 낮은 인지도로 세상에 빛 한번 못보고 사라지는 음원과, 그럭저럭한 노래지만, 높은 인지도로 각종 차트 순위권에 들어버리는 노래들 사이에서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오로지 음악으로만 내 취향의 노래를 찾는 서비스를 만들었었다. 일종의 블라인드 오디션을 모바일 서비스로 하는 아이템을 기획하고 실제 서비스 런칭까지 했었지만, 그때 마침 네이버의 ‘바이브’를 시작으로 다른 유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이러한 같은 기능들을 넣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나쁘지 않은 아이템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좀더 공격적으로 유저를 모으고 홍보를 해서 먼저 시장 점유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는 그런 아이템이었다.
그렇게 첫 사업이 좋지 못하게 끝이나고 피버팅을 해서 다른 사업으로 회사에 매출이 나기 시작했다.

코딩 교육 사업

그렇게 시작한 사업 아이템이 교육 사업이었다. 특히 코딩 교육이 메가 트렌드로 뜨고 너도나도 아이들 코딩 교육을 하려는 붐이 일던 찰나, 우리는 교육이 가능한 공대생 3명이 있었고, 과 동기 후배 선배라는 강사 풀이 있었고, 대구에서 나름 네임밸류가 있는 대학의 학생들이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이 밑바닥에서 시작한 사업이 지금은 20명 가량이 되는 직원의 월급을 줄 수 있을 정도의 회사로 성장했다. 나 또한 작년까지만 해도 회사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하던 창립 맴버였다.

퇴사

아무것도 없이 월세 30의 지하사무실에서 시작해 매출이 없으니 월급도 없이 일 했던 다섯명의 맴버들이 번듯하게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있는 회사로 성장했다는 스토리는 겉으로만 봐서는 정말 큰 인간 승리로 보일 수 있다. 물론 열심히 일한 만큼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보이니까 일하는 맛도 났고, 내가 이 회사의 처음부터 함께 했다는 자부심에 뿌듯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대표님은 나보다 5배는 더 열심히 일 했을 것이다. 회사에서는 대표님이지만 사석에서는 형님이니까 함께 개인적인 자리에서 밥을 먹을 자리가 많았는데, 항상 예전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우리 정말 열심히 했다고 자랑스러워 하며 더더욱 열심히 할 수 있는 힘이 된 적이 많았었다.
그게 3년 정도 지났을 때 체력도 멘탈도 약한 내게 번아웃이 왔고,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시점이 왔다. 무작정 회사의 눈에 보이는 성장이 좋아서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심적인 여유가 없었던 것일까. 대표님께 내 ‘회사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했는데, 그게 내게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제는 내 회사가 아닌 남의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며 두달간의 인수인계 후 좀 쉬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대표님도 내 의견을 존중 해 주셨다. 그렇게 3년간의 나를 한층 크게 성장시켜주었던,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주었던 내 첫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다.

취준

몇 달간 아무 생각 없이 모아 놓은 돈 펑펑 써대며 놀고 먹고 하다보니 이제 슬슬 취준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분야로 취직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후 내린 결정은 웃기게도 21살에 그만 둔 컴퓨터였다.
솔직하게 말해서 처음에는 ‘요즘 개발자가 취직이 잘 된다더라’, ‘개발자가 돈을 많이 번다더라’가 시작이었다. 부정하지 않겠다. 다만 내가 공부 하고 싶었던 분야인 광고쪽으로 학부때 신문방송학을 부전공하며 공부할 때 데이터 마케팅을 공부하려 했다는 것이 생각이 나 처음에는 그쪽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처럼 웹 개발을 공부하지는 않았다. 데이터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이썬을 다시 공부했고, 데이터 전처리를 공부하던 도중 백엔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웹을 공부해보자는 마음으로 일단 프론트를 공부해보자고 시작한 게 이 블로그다. 이렇게 보니까 되게 의식의 흐름이 내 쪼대로 흘러가고 있긴 한데, 애초에 나란 녀석이 인생은 내 하고싶은거 하고 살자는 마음이라, 내 좌우명대로 현재를 즐기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있다. 20살때부터 8년간 장래희망이 4번 바뀌었다. 돌고 돌아 처음으로 돌아왔으니 뭐 3번이라고 하자. 2년 뒤 내가 갑자기 배우가 하고 싶을지, 인생을 어떻게 알겠는가. 어찌되었건 현재의 나는 내년 하반기 판교 입성을 목표로 학부 2학년 때로 돌아가 다시 공부하며 지내고 있다.

끝맺으며

아무 생각 없이 내 인생을 회상하며 글을 끄적여 내려가다보니 30분이 넘도록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옛날을 회상하며 글을 끄적이다보니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세월을 살았지만 그 사이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구나 하며 내 인생을 돌이켜 볼 수 있는 나름 소중한 시간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도 안 볼 글인데(아마 내 여자친구가 보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대충 적다가 잠이나 자자는 생각이었는데, 내 인생 그래도 헛 살진 않았구나 하며 내 스스로를 토닥여 줄 수 있는 생각보다 굉장히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 긴 글을 여기까지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모르지만 그대들은 대한민국 5천만 인구 중, 한 명의 20대 청년의 인생 요약본을 보았다. 이 글을 다 읽는데 5분은 걸릴텐데 과연 이 5분이 그대들에게 어떤 시간이었을지 모르겠다. 그저 세상엔 저런 애도 있구나, 했을 수도, 인생 즐기면서 살다가 나락가는거지, 했을 수도, 도전 하는 모습이 멋있다, 했을 수도. 어떤 반응이던 나라는 사람의 인생을 보는데 5분이라는 시간을 투자한 그대들이, 나를 한심하게 보았다면 반면교사로, 나를 대단하게 보았다면 롤모델으로, 어찌되었건 이 5분이 값진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끄적이다보니 생각보다 뜻깊은 시간이 되었던 것 처럼.
오랜만에 사색에 잠겨 끄적였더니 새벽감성도 느끼고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 종종 일기처럼 생각 정리하는 시간도 갖곤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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